가지가 버팀목도 없이 열매를 매단 채 하늘로 뻗어 있다. 실제의 광경이었다면 이미 줄기가 꺾였을 크기다. 실재의 정경이 아니다. 그 위로 방향을 달리하여 오른쪽엔 나방, 가운데는 나비 한 마리를 그렸다. 화면 오른쪽 중앙에는 벌 두 마리가 날아간다. 화면 아래에는 개미 두 마리가 기어간다. 방아깨비 한 마리는 잡초 줄기 쪽으로 다가선다. 벌레는 그것뿐일까? 그렇지 않다. 자세히 보면 오른편 가지 줄기 중간에 갑충(甲蟲) 즉 빨간 무당벌레 한 마리가 보인다.
화면 아래에는 덩굴 줄기로 퍼져 가는 꽃이 있고, 그 너머로 쇠뜨기 비슷한 풀이 무성히 솟았다. 가지의 빛깔이 각각 다른 점도 이상하다. 오른쪽 줄기에는 흔히 보는 자주 빛 가지가 두 개 달렸다. 그런데 왼편 것에는 본적도 없는 흰 가지가 하나 달려있다. 물감이 모자라서였던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이 그림을 읽으려면, 가지 방아깨비 개미 벌 나비 나방 무당벌레 풀 덩굴꽃 등 무려 9가지 사물의 의미를 찾는 것이 먼저다. 그림을 그냥 보고 즐기면 되지 뭘 그리 따질 것이 있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구도의 그림이 소재의 조합만 조금씩 바뀌면서 후대 작가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화면은 의도를 가지고 조합된 것이지, 결코 일상의 광경을 그린 것이 아니다.
먼저 주인공인 가지다. 가지는 줄기를 타고 오르면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하늘로 향해 뻗어 오르며 열매를 매달고 있는 가지는 한자로 가자(茄子)라 쓴다. 소리대로 읽으면 가자(加子), 즉 자식을 더 많이 낳으라는 뜻이다. 가지 중에는 자주 빛과 흰 빛이 있다. 흰 색 가지는 백은가(白銀茄)라 하여 특히 상품으로 쳤다. 송나라 때 시인 황산곡(黃山谷)이 은빛 가지를 노래한 시 4수가 남아있다.
방아깨비와 메뚜기, 그리고 여치는 모두 누리의 종류다. 누리는 한자로 종사(螽斯)다. 《시경》 〈종사(螽斯)〉편에는 “종사의 날개 온통 소리를 내니, 그대 자손 이처럼 번성하기를. 螽斯羽詵詵兮, 宜爾子孫振振兮”이라 하였다. 서문을 보면 이 시는 집안의 자손이 번성할 것을 축복한 시라고 하였다. 또 《후한서》의 〈양황후기(梁皇后紀)〉에는 “종사는 온갖 복이 말미암아 일어나는 바이다. 螽斯百福之所由興也”라 하였다. 옛 사람들은 메뚜기과의 곤충이 한번에 81개의 알을 낳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 속의 메뚜기나 방아깨비, 그리고 여치는 모두 자손이 크게 번성한다는 뜻을 담게 된다.
다음은 개미와 벌이다. 이 두 곤충은 모두 여왕개미 또는 여왕벌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한 령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화면 속의 개미와 벌은 군신(君臣), 즉 임금과 신하와의 의리를 나타낸다. 또 봉기(蜂起)나 의부(蟻附)란 말에서 보듯 무슨 일이 생기면 한꺼번에 우하고 일어나 협동하여 적의 침입을 막거나 먹이감을 사냥한다. 굳이 두 마리 씩 그린 것은 형제간에 나란히 일어나라는 뜻을 담은 듯 하다.
다시 무당벌레가 있다. 무당벌레는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인 갑충(甲蟲)이다. 제 8폭 그림 아래쪽에도 갑충의 일종인 하늘소(天牛)가 그려져 있다. 갑(甲)은 갑제(甲第) 즉 과거에 1등으로 급제하라는 의미다.
나비와 나방은 애벌레의 단계에서 번데기로 변했다가 다시 허물을 벗는 탈태(脫蛻)의 과정을 거친다. 이점은 제 6폭의 매미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어린아이가 자라 씩씩한 젊은이가 되고, 다시 경륜을 갖춘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어 아이 적을 돌아보면 나비가 애벌레 시절을 돌아보는 감회가 있다. 오래 동안 번데기로 매달려 있다가 허물을 벗고 나와 하늘로 훨훨 나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닦아 마침내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가지 줄기 아래는 잡초는 언뜻 보아 쇠뜨기와 비슷하나 같지 않고, 그보다는 물풀의 일종인 말풀(杉葉藻)에 더 가까워 보인다. 꽃도 땅바닥을 기어가며 꽃을 피우고 있다. 잎새의 모양은 사실과 다르지만, 안진방이 꽃으로 불리는 민들레를 그린 것인 듯 하다. 강릉 오죽헌박물관의 초충도 병충 제 5폭 가지와 방아깨비 그림 아래쪽에도 같은 꽃이 그려져 있는데, 노란 색이다.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에 보이는 뿌리 아래 덩굴져 자라는 포공영(蒲公英), 즉 민들레 그림도 그 형태가 비슷하다. 민들레는 추위에 잘 견디고 생명력이 강하다. 덩굴로 번져가는 풀꽃들은 언제나 자손이 번성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그림 속에 나오는 아홉 가지 소재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것을 한 자리에 모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귀한 자식들(가지) 덩굴지듯(아래쪽 풀과 꽃) 많이 낳고(방아깨비), 과거에 장원급제해서 무당벌레), 군신의 예를 지켜 임금에게 충성하며(벌과 개미), 거듭 탈태(脫蛻)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나비, 나방)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