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臥薪嘗膽)의 4년 세월 끝에 드디어 천연식초제조에 성공했다. 개인적으로는 천지개벽과 같은 대운(大運)이 찾아왔다. 새벽이 눈을 뜨니 어느새 유명인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인종(忍從)의 세월은 쓰라렸지만 그 열매는 달았다. 한 달에 100만원을 벌든 사람이 한 달에 천만 원씩을 벌게 되었다. 나는 열광했다. 이제야말로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말을 달리고 8기통 캐딜락을 타고 밤마다 경국지색을 끌어안고 촌구석에서 혼자 굶주렸든 육신을 불사르자! 나는 거대한 창고를 짓고, 합천군 17개 면의 전통 항아리를 모두 사들이고 사람을 고용해서, 대대적으로 식초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1년만 지나면 나는 갑부가 된다. 오! 감미로워라 새콤달콤하게 익어가는 식초 향기여. 매일같이 수십 명씩 손님이 찾아오고, 기자가 인터뷰를 기다리고, 소낙비처럼 전화벨이 울리고, 우체부는 한 뭉치씩의 편지를 배달해 왔다.
몽매에도 그리던 1년이 지나갔다. 설레는 가슴으로 독 뚜껑을 연 나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함을 느꼈다. 하루에 쌀 두 가마니씩 1년을 만든 식초가 단 한 독도 온전한 것 없이 모조리 썩어 있었다. 썩어서 허옇게 뒤집어진 그 꼴은 그야말로 추악한 욕망의 파렴치였다.
그날 이후부터 또 1년간 소금 친 미꾸라지처럼 몸부림쳤지만 단 한 병의 식초도 생산하지 못했다. 일장춘몽은 끝나고 눈까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신경은 무쇠도 녹인다더니 저 무서운 간장의 압통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다. 대량생산을 위하여 고용했던 사람들을 모두 내 보내고 옛날처럼 자신이 직접 염력(念力)으로 소량씩 식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본적인 환경을 바꾸기 위해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다. 너무나 많은 인파가 몰려온 탓에 숙성실을 비롯한 집 전체가 세균에 오염되었던 것이다.
15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합천 골짜기에 조그마한 식초양조장 하나를 경영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 옛날 전파상 주인 수준으로 되돌아온 것뿐이었다.
인간이란 일정한 크기의 돈 그릇을 갖고 태어난다. 질량불변의 원칙이다. 그 그릇을 알맞게 채워준다면 좋겠지만, 만일 그 정도를 넘어서 억지로 축재를 하려 든다면, 그 그릇에 담겨있던 소중한 다른 것들이 넘쳐 나가게 된다. 부모가 병들고, 이혼을 하게 되고, 자식이 다친다. 그래도 그칠 줄 모른다면 마침내 자신까지도 모두 내 놓아야 한다.
돈을 위해 일하면서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잔인한 일이고, 한밤중에 깨어나 청구서 처리에 겁을 먹는 것 또한 끔찍한 삶이다.
이 세상에는 사랑 때문에 우는 사람보다 돈 때문에 우는 사람이 더 많다. 돈에 대한 스트레스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므로 돈을 빼놓고 점잖은 교사를 가장하는 건강법은 수사(修辭)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실질이 없다. 돈에 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