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6/04/19, Hit : 7149
제목    후배의 편지 (1)
작성자   이선



이런날은 우산도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 속을
한없이 걸어 보고 싶어 집니다.

그러면 제 맘골에 쌓인 무수한 옳지 않은 점과 선들이 내리는 빗줄기에
씻겨 내려가서 세월의 상흔으로 어지럽혀진
제 마음의 도화지가 조금은 예전의 투명함으로 되돌아 갈수 있을런지,,,,

하고 싶은 일들은 너무 많았고 해야할 일들도 너무 많기에
시나브로 컴 앞에서 숫자와 씨름하는 저 자신이 무척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주식 투자는 몇집 건너 한집 정도로 보편적인 투자 수단이지만
몇년전 제가 주식한다는 소식이 가족들에게 전해졌을때
약속이나 한듯 일일이 제게 전화걸어 충고,좀더 심하면
반 협박조로 모두들 만류를 했었습니다.

그간 제가 살아온 삶이 다른 분들보다 사회적인 부분에 있어
많이 뒤떨어질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느날 갑자기 가장 살벌하다는 주식시장에 용감하게 뛰어들었으니
저를 아는 분들은 당연히 걱정이 되었을꺼란 생각이 듭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ㅎㅎㅎㅎㅎ

이 시장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공을 꿈꾸듯이
저도 현실을 외면할수 없기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 작은 욕심이 있지만
대박이나, 필요이상의 축적이 될만큼의 큰 수익은 애초에 바라지 않았습니다.

능력과 부유함은 정비례하는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식이지만
그러기엔,,,,저는 살아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무허가 판자촌에서도 살아봤고 더 이상 비참할수 없는 장애자 시설에서
일해본적도 있습니다.

처음엔 봉사라는 그럴듯한 미명아래 들어갔지만,
머얼건 우거지국에 짠지하나 밖에 없는 밥을 도무지 삼킬수가 없어서
들어간지 삼일동안 물만 먹고 버텨야 했답니다.
삼일을 굶으니 제 사치스런 위장도 어쩔수 없이 그 밥을 받아들이더군요.^^*

식사시간이면 때를 알리는 벨 소리가 크게 울렸는데
일반인들이 보면 개밥과 다를바 없는 그것조차 성찬인양
이방 저방에서 뇌성마비아 친구들의 동물적인 괴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어떤 아이는 방언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는가하면, 벽을 손발로 마구 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참 견디기 힘든 분노와 인간으로써의 슬픔을 느꼈습니다.

건물과 조금 떨어진 곳에 원장 사택이 있었는데 아들딸 모두
시설운영해서 얻은 수익으로 유학보내고,
말라 비틀어진 아이들에 비해 너무 건장하고 비대한 분이셨습니다.

뒤틀린 사지에, 스무살 넘어도 대소변 못가리는건 기본이고,
잇몸이 아예 없는 아이, 열댓살인데 몸은 네다섯살 어린아이,
몸을 자로 잰듯 세로로 양분해서 오른쪽 부분만 모두 빠알갛게 물든아이,,

그러다보니 작은 정부 보조금외에 가장 큰 수입원인 손님들이 방문하는날엔,
눈치코치 없이 갑자기 달려든 아이들때문에 비명을 터뜨리는
호들갑스러운 손님은 꼭 한두명 있게 마련이였답니다.
소정의 기부금액에 대한 댓가로 우아하게 좋은 일 했다는 뿌듯한 보람을 안고
돌아가게 해야 서로간의 계산이 맞아떨어지는것인데,
사리분별 없는 애들 때문에 가끔 그런 헤프닝이 벌어지곤 했었답니다.ㅎㅎㅎㅎ

그런 곳에서 일하는 보모님들의 첫출발은 음지에 대한 나름의
봉사의식으로 들어선 분들이 대부분인데,,시간이 흐르면
최악의 조건속에 초기의 책임의식은 퇴색하기 마련이고
결국 책임의식 = 직업의식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네,다섯평 남짓한 방(잘땐 좁아서 엇갈려서 누웠습니다)에
제가 맡은 열 여섯의 아이들,,,,,,
은하수,문주란,신길동,,,,,지금도 한명 한명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문주란은 노래를 잘 불러서 붙여진 이름이고 신길동은 최초 버려져서 발견된
곳이 신길동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송창식도 있었네요)

이 땅에 젊은이들이 그러하듯이 저도 참으로 많은것을 알고,배우고 싶었고
그래서 세상의 어떤 가능성으로부터도 자신을 차단시키는 것이 두려워서
어떤 편견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미리 닫는것을 경계해가며
언제든 무엇에든,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살았습니다.

제가 살아온 모습은
메이스피일드의 시처럼 "신이 찾아보라고 여기로 나를 보내신 저 하나의
미를 찾아" 끊임없이 묻고 배우고 추구하는 과정이였습니다.

그랬기에 시간과 세월의 다양한 경험들이 쌓여서 만들어내는
정신의 진보를 믿었고 젊은 시절의 존재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들이
마치 게놈지도처럼 시간과 비례적으로 조금씩 완성도가 높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삶이 뭔지,
"나"란 누구인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그런데...아니더군요......
정신적 게놈 지도는 결국 완성 불가능한 것이엿습니다

그것을 알고 추구하는 주체인 유일한 잣대로써의 "내"가 애초에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여러가지 올바르지 못한 점들과 선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자 시설에 있을때 저의 모습을 말씀드리려고 하면
아마도 선배님께서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그럴듯한
후배의 모습을 기대하시겠지요....

아니였습니다......

방문하는 손님들에겐 천사의 얼굴로 연기를 하고 뒤로는 곳간에 가득
그만을 위한 재물을 쌓는 원장님의 얼굴에서 위선을 보았고
들어온 이유를 잃어버리고 양육보다는 사육에 가까운 보모들의
얼굴에선 나태와 몰인정을 보았었기에,

그들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칠수 있도록,
내가 거울이고 본보기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도가 맞아 떨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자신이였습니다.
베이유가 말했던가요...
"동정은 어느 정도까지는 내려 가지만 그 이하로는 내려 가지 않는다"라고..

그것은 적어도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오만이였고
사랑이 아니라 동정이였음을 저는 아프게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속일수 있어도 제 자신은 속이지 못하겠더군요.

요즘은 장애자 시설이나 고아원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그때 제가 일한곳은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평소 자신을 꽤 인정머리 있고 분별심도 있으며 도리를 아는 인간이라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저이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근원 깊숙한 곳에 묻혀있던 오만과 아마도 모든 사람속에
내재되어있을 제 자신의 정신적인 폭력성을 똑똑히 보아버렸습니다.

마치 스스로 어느정도 수양이 된 선승으로 생각하던 절간의 스님이
왁자지껄한 저자거리에 내려와서 산사의 고요함에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던,
중생의 마음과 하등 다를바 없는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에 부딛치는 것처럼요..

저는 세상이 문제 투성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반목,시기,다툼,,그리고 마침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살육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아니였습니다.....
아니더군요.......

세상이 아니라 유일한 문제는 바로 제 자신,,,
모든 문제를 세상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떠넘기는 제 자신에게
다이렉트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여지는 세상이 아니라, 보고 있는자...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수많은 "나"들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이상
이 세상은 영원히 이 정도의 세상으로 남겨지게 되겠지요....

저에게도 책임추궁을 제대로 했느냐고 물으신다면,
아마 머뭇거리며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을겁니다.
그러기엔 저는 더이상 하얗고 투명한 도화지가 아니며
이미 제 마음속엔 너무 많은 옳지 않은 점과 선들이 난립해있으니까요...

비가 저를 감상적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오늘 제가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진짜 드리려던 말은 정작 빠트릴뻔했군요.^^*
선배님은 언제쯤 시간이 나시는지요?
주말이 좋으신지 아니면 평일이 좋으신지 먼저 일러 주시면
제가 거기에 맞추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저 괘념치 마시고 선배님 편한 시간대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따뜻한 주말 되시길 바라며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 (__ __)

2003년 유월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소식끊긴 후배
혹여 이 글을 본다면 연락하기를...
-심인제 010-6413-0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