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6/05/06, Hit : 6996
제목    비와 눈물 사이
작성자   이선



비와 눈물 사이

비를 보면 눈물난다. 빗소리를 들으면 눈물난다. 비라는 액체가 품은 비의(悲意)를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안에 숨어 있는 비의가 비를 만나면서 슬퍼지는 것일까.

일찍이 싯달타는, 삼계(三界)가 모두 고통(苦痛)스럽다고 했다. 기쁨도 고통의 일종인 슬픔이므로,
무명(無明)을 깨치지 못하는 삼라만상은 고통에서 헤어나기 어렵다고. 싯달타의 이 말을 신뢰한다면
슬픔의 액화현상인 눈물도 저 홀로 순수하지는 않으리라. 소주로 친다면 눈물은 증류식보다는
희석식에 가까우리라. 눈물은 슬픔의 곡진한 표시이라지만, 기쁨에 기댄 마음을 떨쳐내지
못해서라는 싯달타의 견해는 그럴싸하지 않은가. 너무 기뻐서 눈물난다고 하는데, 눈물에 슬픔과
기쁨이 한 데 어우러져 순수하지 않다는 말도 그 동일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를 바라보자. 내리는 비는 추락의 이미지 때문에 슬프다. 내리는 비는 추락하는 나를
반영하면서 슬프다. 나라는 개체의 시각으로 보건데, 비라는 개체는 빗방울이라는
무수한 개체의 추락하는 집단이다. 하나의 빗방울은 다른 빗방울들과 어울려 비가 되고,
비가 내리는 풍경을 자아낸다. 가령 빗방울이 하늘에 맨홀이 생겨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라면,
슬픔이 생겨나기보다 공포감에 벌벌 떨게 되지 않을까. 하늘의 빗방울은 여러 갈레로 갈라지고,
그 갈라진 개체가 빗줄기를 이루면서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갈라져 내려오므로 사이가 생기고,
사이를 통해 얼핏얼핏 보이는 사물은 환영에 가까운 풍경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마저
기쁨이 슬픔의 일부분이듯 슬픔 속으로 고요히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