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아시아의 황금기에
빛나던 하나의 등불 코리아
죽였던 등불 다시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빛이 될지니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 타고르 -
중세에는 아시아의 기마대가 식량을 얻기 위해 말과 활로 유럽을 유린하였다.
근세에는 유럽의 함대가 전세계를 주름 잡으며 약탈과 살륙을 서슴치 않았다.
현세에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각대륙의 주요국 침공을 자행하고 있다.
미래에는 '대고구려연방'이 세계를 경영할 것이다.
- 소설을 시작하며 -
제1부 동방의 등불
윈텔 몰락의 서막
삼성동 무역센터, 한국 경제의 상징인 아셈타워 그랜드볼룸에는 미국의 인텔사가 코드명 콘로에로 더 잘 알려졌던 차세대 듀얼코어 프로세서인 코어2 듀오 메롬의 한국 발표회가 열리고 있었다. 멀티코어 프로세서의 기초 단계인 듀얼 코어는 기존 CPU 집적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세서의 핵심 연산장치인 코어를 여러개 탑재해 명령어를 다중으로 동시에 실행시킬 수 있게 한다. 또한 기존 반도체가 90나노미터 공정에 6백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다면 인텔의 듀얼 코어는 65나노미터 공정을 구현해 집적도를 향상시켜 반도체 양산 기술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이라 자부하고 있다.
발표회장의 단상에는 IT 강국 한국의 위상을 인정하듯 인텔 CEO 폴 오텔리나가 직접 나서서 자기 회사의 제품을 발표하고 있었다. 500여평의 발표회장은 수 많은 국내 컴퓨터 제조업체 임원과 개발자들 그리고 전문 기자들로 물샐틈이 없었다. 인텔이 미국 국내 발표 후 전세계 순회 발표로는 한국이 처음이라 일본과 중국의 관계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세개의 커다란 스크린에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모 순간에는 가끔 카메라 플래시만 터질 뿐 오페라 대작을 보는 듯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사실상 지금까지 전세계 IT산업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OS와 인텔의 CPU가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들 '윈텔'이 지적재산권을 움켜쥐고 고급인력과 대량 생산 설비를 배경삼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갈것이라는 의견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발표회가 끝나갈 무렵 그랜드볼룸의 출구로 한 중년의 남자가 폴의 성능 테스트 결과를 자랑하는 흥분된 목소리를 뒤로하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문을 나서고 있다.
관악산 지하 벙커, 70년대 박정희 정권 말기 완공되 지금은 수도방위사령부가 들어선 관악산 기지의 지하 3백미터 위치에 몇년 전 비밀 연구소가 들어 섰다. 그곳의 한 실험실에 한 떼의 연구원들이 모여 뭔가 야릇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원들의 뒷켠에는 인텔 발표회장을 나선 그 중년의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서 실험 장면을 주시하고 있다. 정전기 방지 처리가 된 탁자 위에는 공기돌 크기에 정8각형으로 면이 깍여진 유리 조각을 중심으로 산재한 전자 기구들이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수 많은 선과 조직들이 어지러우면서도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지만 단순히 보면 하나의 반투명한 유리조각에 불과했다. 광케이블의 한쪽 끝의 전자 기구에는 키보드와 마우스, 다른 기구에는 광디스크가 연결되어 있고 반대쪽의 기구에는 LCD모니터가 연결되어 있다.
살짝 푸른색이 들어간 보안경을 쓴 여성연구원이 이제 막 디스크를 삽입하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마우스로 데이터 로딩 버튼을 눌렀다. 모래시계 모양의 아이콘이 나타나고 얼마 후 데이터의 로딩이 완료되었는지 프로그램 실행 버튼이 표시된다. 아까의 그 연구원이 뒷켠의 중년 남성을 돌아보며 손을 내밀어 마우스 버튼을 누를 것을 눈짓으로 요청한다. 중년 남성은 손을 좌우로 젓다 손바닥을 펴 내보이며 그 연구원에게 버튼을 누르라고 한다. 다시 모든 사람들의 눈은 LCD 모니터로 쏠린다. 마우스 버튼을 누르는 연구원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드디어 버튼을 눌러 프로그램이 실행되자마자 8각형의 유리 조각 주위에 일순 오로라와 같은 희뿌연 빛이 형성되는가 싶더니 LCD 화면이 바뀌고 건축물의 뼈대가 주르륵 올라간다. 곧바로 100여층 정도의 건축물의 외벽까지 3D로 완성되어 빙글 빙글 돌아가며 전체면을 고루 보여준다. 잘 만든 애니메이션 한편을 보는 듯한 실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수명의 연구원들이 동시에 괴성을 질러대며 펄쩍펄쩍 뛰며 서로 얼굴을 붙잡고 돌려가며 끌어안다가 그 중년 남성의 주위로 몰려 들었다.
"실장님 보셨죠?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모두 수고 많았습네다."
북한 억양을 쓰는 실장이라 불린 예의 그 중년 남성은 연구원들의 환호성과는 달리 아까와 같은 희미한 미소로 덤덤히 회답한다.
방금 연구원들이 진행한 실험은 최신형 펜티엄 컴퓨터로 수행시킬 때 적어도 7시간이 걸리는 고도의 계산을 요하는 3D 건축 설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이 순식간에 수행되고 그 결과를 바로 보여주었다는 것은 수퍼컴퓨터와 같은 시스템을 이용했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으나 그 방의 어디에도 수퍼컴퓨터나 아니면 외부로 연결된 케이블의 흔적도 없었다. 아니 수퍼컴퓨터라 하더라도 700메가바이트에 달하는 프로그램과 데이타를 이렇게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