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뜸을 들이던 박철웅위원장이 목이 마른지 다 식어버린 녹차를 한 모금 마신다. 덩달아 대통령도 녹차에 손이 간다.
"우선 고고학 이야기부터 말씀드려야겠습니다."
"---"
"90년대 초 북조선과 중국의 고고학자들이 중국 요녕성에서 합동으로 단군릉을 발굴한 일이 있습니다."
"단군릉은 평양에서 발굴된게 아니었나요?"
"물론 평양 대박산에서도 발굴되었고 이 능은 대대적으로 복원되어 인민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평양의 단군릉이 5천여년전의 유적이라면 요녕성의 단군릉은 그보다 2천여년 더 거슬러 올라가는 고조선 초기의 단군릉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발표를 안 했지요?"
"발표를 할 수 없었습니다. 발굴 도중에 중국 학자들이 상부의 지시라며 모두 철수하고 다시 덮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덮고 나서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공안 초소까지 세웠습니다. 우리측 학자들은 아무 성과없이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요녕성에 있는 릉이 단군릉이고 더우기 평양보다 2천여년이 이전의 유물이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대통령은 고고학의 식견을 떠나 논리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고고학이나 유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우리 민족과 과거의 역사에는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온 대통령이었다. 단군릉이라고 하니 당연 귀가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철수할 때 조선과학원 교수를 따라갔던 한 학생이 안타까웠는지 연장통속에 작은 나무상자를 하나 숨겨 왔습니다. 겉은 많이 삮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속은 거의 말짱하더군요. 역시 주목나무였나봅니다. 그 속에 청동 거울이 하나 있었는데 거울이라기 보다는 장신구에 가까왔지요. 어쨌든 그 주목나무 상자 파편을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측정한 결과 놀랍게도 7천여년전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단군릉이라고 단정한 것은 나중에 발견된 평양 단군릉과 형태나 출토품들이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7천여년전의 유물이라, 아니 우리 단군릉이라니 대단하군요"
대통령이 자세를 고쳐 앉고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더욱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청동 거울이었습니다. 정 팔각형으로 크기는 한뼘 정도인데 한 쪽 면은 유리같은 재질로 덮여 있고 반대쪽에는 가운데 둥그런 원이 있고 그 속에 삼태극 모양이 부조되어 있었습니다. 세개의 태극마다 눈알만한 보석이 박혀 있는데 각각 색이 달랐습니다. 유리와 보석의 종류나 재질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삼 태극 주위에는 팔괘와 같은 문양이 각인되어 있는데 그 각각의 팔괘와 삼태극원 사이에도 유리 구슬이 하나씩 박혀 있었습니다."
박철웅위원장이 거의 숨도 안쉬고 말을 이어 나갔다.
"밝은 빛으로 투과해보니 앞 뒤면이 서로 통해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 쪽 유리면에 빛을 쏘이면 다른 쪽 삼태극의 각각 보석에서 서로 다른 빛이 직선으로 뻗어 나와 일정 거리에서 합쳐지는 현상이었습니다. 태양 빛으로 투과를 시키면 그 모이는 점에서 거의 500백도에 가까운 열이 발생되었습니다. 나무를 태워 불을 붙일 정도였지요. 이때까지는 뭐 돋보기 정도로 열을 모을 수 있게 설계가 되어 있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크기의 블록렌즈로 같은 실험을 해도 300백도 정도로 연기만 나지 불이 붙을 정도는 아니었죠. 뭔가 내부에서 빛을 증폭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좀 더 정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유물을 포장해 김책공대로 보냈습니다."
"누군가가 장난으로 미리 가져다 놓았던게 아닐까요?"
대통령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복희팔괘와 문왕팔괘는 이미 익히 알려진 바이고 하도낙서와 같은 옛날 문양들과 삼태극은 지금도 많이 쓰이는 도안들이다. 더군다나 태극기의 문양도 태극과 건곤감리 4괘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별반 신기할게 없는 노릇이나 7천여년전의 무덤에서 그런 정교한 물건이 나왔다는것 만큼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박철웅위원장이 숨을 돌리고 더욱 놀랄만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들도 혹시 그런게 아닌가 해서 정밀 조사를 했던 것입니다. 김책 공대 실험실에 몇 몇 교수들이 모여 갖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전자현미경으로 외부 조직을 일일이 검사하고 엑스레이까지 동원해 내부 조사를 했지만 방사선이 투과하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삼태극의 보석에 빛을 쪼여 반대편으로 어떻게 나오는지를 관찰했습니다. 빛을 쪼이니 반대편 유리면에 각 고유의 보석색이 퍼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삼태극 주위의 팔괘 문양에 박힌 유리 구슬에서도 빛이 나왔습니다."
"뭐 서로 내부에서 연결되어 있다면 그럴 수 있는게 아닙니까?"
"놀라지 마십시요. 단순 연결이 아니었습니다. 삼태극 각각의 조합에 따라 서로 다른 구슬에서 빛이 나왔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안되겠다 싶었는지 박철웅위원장이 옆에 있던 메모지에 펜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 삼태극의 각각의 보석으로 빛을 쏘일때마다 서로 다른 팔괘의 구슬에서 빛이 따로 따로 나오는데, 빛을 두개의 보석에 동시에 쏘이면 또 다른 별개의 구슬에서 빛이 나옵니다. 세개의 보석에 동시에 빛을 쏘이면 또다시 다른 구슬에서 빛이 납니다. 삼태극 보석에 빛을 비추는 조합에 따라 8개의 팔괘 앞에 있는 구슬마다 각 각 따로 빛이 나왔던 것이지요."
"허!"
대통령이 말을 잇지 못했다.
"신기한 물건을 실험한다고 소문이 났던지 콤퓨타 교수가 구경하러 와 있었지요. 그 사람이 가만히 보고 있더니 '3비트야'라고 소리를 지르는게 아닙니까? 무슨 소린가 해서 물어보니 콤퓨타 계산의 기본 단위인 2진수의 3비트 체계와 똑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박철웅위원장이 메모지의 빈 구석에 0과 1의 숫자를 나열하며 재차 설명해 나갔다.
"이렇게 말입니다"
000, 001, 010, 011, 100, 101, 110, 111
"3비트를 숫자를 순서대로 배합하면 총 8개의 조합이 생깁니다. 그림에서 보시는 팔괘와 똑 같지 않습니까?"
"---"
인터넷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는 대통령이라 할 지라도 컴퓨터 계산의 기초가 되는 2진수 연산이 나오니 잘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2진수는 숫자 하나가 0과 1 두가지밖에는 표현을 못한다. 0 다음에 1이고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으니 한자리 위로 올라가 1이 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해서 3자리로 표현할 수 있는 최소값은 '000'이고 최대값은 '111'이 된다. 한참을 더 설명한 후에야 대통령이 완전히 이해를 하는 표정이다.
"아하 그렇군요."
그런데 고고학 발굴을 이야기하다가 결론은 컴퓨터의 기본 원리로 빠져 나왔다. 대통령은 여기 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궁금한 표정으로 박철웅위원장을 바라 보았다. 이 표정에 응대라도 하도 다시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일단 이 청동 거울을 '단군의 빛'이라 이름 붙이고 재현에 들어갔습니다. 단군의 빛의 진기한 현상을 전자회로로 구성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3개의 빛을 따로 감지하는 전자소자로 회로를 구성해 LED에 순서대로 불을 켜게 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전자회로없이 단순히 빛만으로 처리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광통신에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희 북조선에도 '광명망'이라는 100Mbps 광통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광통신은 전기 신호를 빛으로 바꿔 2진수의 형태로 연속적으로 보내 반대쪽에서 검출해 전기신호로 다시 바꿔주는 방식입니다. 빛의 3요소가 붉은색, 녹색, 파랑색입니다. 이 세가지 파장을 서로 섞어 3비트의 신호로 만든 다음 광섬유로 실어 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과를 먼저 말씀드리면 100Mbps의 속도가 간단히 8배 가까이 늘어난 800Mbps로 전송할 수 있었습니다."
"대단하군요. 광통신 방식의 일대 혁명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빛만으로 연산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끝내 구현해 낼 수 없었고 단지 이론만의 가설로 컴퓨터연산장치를 설계했습니다."
"컴퓨터를요?"
"예 말 그대로 광컴퓨터가 되는 셈이지요."
"예상대로라면 8배 빠른 컴퓨터가 만들어지는 건가요?"
"아닙니다. 광통신에서는 8배 정도 빨라지지만 컴퓨터 연산에 적용하면 최소한 120배 빨라진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습니다."
"기겁을 할 일이군요."
"공학부 교수들이 욕심이 많을뿐더러 참으로 끈질겼습니다. 이 결과를 김정일지도자 동지께 보고를 하였습니다. 당장 특별연구위원회가 만들어졌지요. 연구위원회가 아무리 용을 써도 더 이상 진전이 없었습니다. 답답했지요. 그러던차에 '3비트야' 라고 소리쳤던 그 김영철교수가 터무니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어떤 제안이었는데요?"
"남한이 반도체 공학이 많이 발전했으니 공동연구를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하하 그 교수 참 재밌군요."
"남조선 컴퓨터를 중국을 통해 들여와 공대에선 제법 많이 사용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성사가 됐나요?"
"김정일위원장이 재가를 했고 국정원 라인을 통해 비밀리에 접촉을 했습니다."
"그때가 언제였습니까? 아니 성공은 했나요?"
"성공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