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웅위원장이 일어서자 모두 들 따라 일어선다. 이제 남북합작에 의해 탄생한 광반도체 시제품을 보러 갈 차례다. 박철웅위원장이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을 돌아보며 다소 미안한듯한 표정을 짓는다.
"비서실장님과 경호실장께서는 잠시 이곳에서 사령관님과 담소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번 프로젝트가 비밀아닌게 없지만 이곳만큼은 그 설비나 기술뿐만 아니라 개발연구원들까지 외부 노출을 차단하는 곳입니다. 하여 실례합니다만 양해바랍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다들 이해하는 분위기다. 박철웅위원장이 앞장서고 대통령과 남궁 고문이 뒤따른다. 집무실의 절반을 막아 금속벽을 친 칸막이 중앙에 커다란 레버를 돌리는 철문이 가로막고 있다. 문의 한쪽벽에 얼굴과 안구를 동시에 인식하는 생체인식기가 있다. 출입요청 버튼을 누른 박철웅위원장이 얼굴을 밀착시킨다. 출입 허용을 뜻하는 '삐익'하는 신호음이 들린 후 레버를 돌려 가볍게 문을 연다.
"대통령님 들어가시지요."
벽에 걸려있는 멸균복을 입고 에어커튼을 통과해 이물질을 제거한 후 연구실로 들어선다. 연구실이라지만 반도체공장을 연상시킨다. 각 종 기계들로 가득차 있다. 정면에 한 사내가 대통령 일행을 맞이한다.
"대통령님 반갑습네다. 김영철입네다."
박철웅위원장과는 달리 북한 억양이 강하게 배어 나오는 말투로 김영철교수가 정중히 인사를 한다.
"아 그 김책공대 김영철교수시군요. 고생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평소 존경하는 대통령님을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네다."
"여기 박위원장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큰일을 하셨습니다."
김교수의 어깨 너머로 멸균복을 차려 잆은 십여명의 연구원들이 도열해 있다. 김교수가 대통령을 안내 해 연구원들 앞으로 다가 선다.
"저희 팀원들입니다. 북쪽에서 온 친구들이 반이고 절반은 남쪽 기술자들입네다."
전체 연구원들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대통령도 맞절을 하듯 고개를 숙인다. 사열을 하듯 한명씩 돌아가며 악수를 한다. 맨 끝에 서 있던 한 여성연구원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다.
"대통령님!"
하며 열에서 뛰어나와 대통령을 와락 끌어 앉으며 흐느낀다.
"하하! 이 여성연구원이래 대통령님 렬성팬입네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국민 모두가 대통령의 팬이 되고 대통령은 그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화합된 나라가 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치 못하다. 대통령이 여성연구원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키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듯 엉뚱한 말을 한다.
"여러분과 함께 청와대 정원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고 싶은데 언제쯤되렵니까?"
"곧 되지 않겠습니까? 우선 이쪽으로 오시지요."
박철웅위원장이 빨리 결과물을 보고 싶은 대통령의 애를 태우 듯 간이 회의실로 안내한다. 회의실 정면에 하얀 전동스크린이 내려와 있고 벌써 노트북에 연결된 빔프로젝트가 빛을 발하고 있다.
대통령이 먼저 자리에 앉고 그 뒤에 몇 몇 연구원들이 자리를 찾아 앉는다. 박철웅위원장이 스크린 옆에 섰다.
"이 자리가 있기까지 남궁 고문님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우리 연구원들의 열정으로 드디어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우선 남한의 대통령님을 모시고 간소하게나마 보고를 드릴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님을 모시고 오면서 그간의 정황에 대해서는 저와 남궁 고문님께서 대략적인 설명을 드렸으므로 실제 기술과 제품에 대한 설명은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신 김영철교수님께 부탁드립니다."
박철웅위원장이 서두를 끝내며 김영철교수를 연단으로 불러 세웠다.
"대통령님 그리고 남궁 석 고문님 반갑습니다."
김영철교수도 말로만 들었지 외부에서 모든 연구 기자재를 물심양면 후원해 준 남궁 석 고문은 초면이었다.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슬라이드가 넘어가며 '탄화수소실리콘'의 소개 화면이 펼쳐진다.
"그림상의 탄화수소실리콘에 대해 말씀드리전에, 포항공대 양동근 교수님을 먼저 소개 올리겠습네다."
탄화수소실리콘이란 신물질을 개발한 양동근 교수가 엉거주춤 일어나 좌중에 인사를 하고 대통령과 남궁 고문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며 답례를 한다.
"탄화수소실리콘은 이번에 개발한 광프로세서의 모체가 되는 신물질로서 인사드린 양동근교수팀이 각고의 노력끝에 개발에 성공했습네다. 일반 반도체는 실리콘이나 게르마늄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잘 아시리라 믿습네다. 광프로세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빛과 전기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 탄화수소실리콘과 같은 신소재의 광반도체가 필요했습네다."
"광반도체의 주 성분은 우리나라에 널려 있는 차돌맹이와 같은 돌을 정제한 순도 99.9퍼센트의 규소와 독도 해저에서 채취한 메탄하이드레이드의 합성 물질입니다. 메탄하이드레이드와 규소를 3천도 이상의 고온에서 순간적으로 압축시키면 여기 보시는바와 같이 공업용 다이아몬드와 같은 전혀 새로운 성질의 물질이 만들어집네다."
김영철교수가 미리 준비한 투명한 유리 덩어리를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 나간다.
"규소와 메탄을 융착시키면 'CH4SiO2'라는 복잡한 화학식을 가지는 안정된 신소재로 변형되어 내부적으로 정8면체의 입자를 구성하며 가공하기에 따라 반도체의 성질과 빛을 증폭하거나 제어할수 있는 기능을 합네다. 축구공만한 분말 합성원료를 고압농축시키면 보시는바와 같이 탁구공만한 원석이 만들어집네다."
"이 원석을 적당한 크기의 정8각형으로 절단한 후 아르곤레이저와 헬륨레이저 그리고 루비레이저를 결합한 초정밀 레이저건으로 미세하게 내부 가공을 하게 됩니다. 일반 반도체 가공 장비를 개조한 레이저 가공기를 프로그램을 이용해 1나노미터 이하의 정밀도로 내부에 각각의 소자와 광선로를 만들어 주는 것입네다."
"일반 석영 유리봉을 얇은 웨이퍼로 만든 다음 여러 단계의 가공을 거친 후 반도체가 칩이 만들어지는데 반하여, 광반도체는 레이저의 열로 탄화수소실리콘의 내부를 녹이거나 태우게 되면 서로 다른 3가지 레이저의 조합에 따라 서로 다른 성질과 특성을 갖는 소자들이 공간속에 만들어집니다. 이들간의 접속 패턴도 유리면 내부에 레이저에 의해 입체적으로 조각되므로 공정이 간단해 대규모 생산설비가 필요없고 여기 연구실과 같은 클린룸도 필요없게 됩네다. 그 만큼 저비용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습네다."
"만들어진 광전계 조각은, 광전계라함은 옵티컬 프로세서를 말합니다. 즉 광속으로 동작되는 CPU란 얘기지요. 앞으로는 광전계와 같이 되도록 우리말로 전문용어를 만들 생각입니다. 광전계가 세계로 전파되게 되면 관련 용어들도 우리말을 사용할 수 밖에는 없을겝네다."
자신에 찬 김영철교수의 설명이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8각형의 광전계 조각(칩)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 집네다. 맨 아랫단에는 외부기기 연동과 통신을 위한 광접속부가 있습네다. 이것은 기존의 컴퓨터 전자부품들과도 연계시킬 수 있도록 카드릿지에 장착될 수도 있습네다. 그 위에 같은 모양의 연산용 조각이 올려지고 이것은 최대 8개까지 접층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의 연산용 조각이 기존 64비트 CPU와 엇비슷한 성능을 발휘합네다. 이것이 8개까지 집적되면 계산적으로는 512비트 컴퓨터가 되지만 실제적으로는 AMD 64비트 CPU 8개를 병렬 연결한 일반용 슈퍼서버보다 4천배 이상의 성능을 보입네다."
"단적으로 설명드리면 로렌스 리버모어 미국 국립연구소에 설치된 IBM의 블루진 슈퍼컴퓨터가 280.6테라플롭스로, 그러니까 1테라플롭스가 1초에 1조회의 부동소숫점 연산을 처리하는 단위로 현재까지 만들어진 슈퍼컴퓨터중에 세계 최고였지요. 하지만 이론적으로 계산하면 우리의 광전계가 블루진의 성능을 상회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물론 주변기기가 얼마나 잘 설계되어 연동되느냐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이제 더 이상 프로세서의 연산속도는 무의미해집니다."
실로 엄청난 성능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과 함께 배석한 남궁 고문도 국내의 알아주는 정보통신 전문가라 하지만 오늘 듣는 내용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깅영철교수의 차분한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광 프로세서 개발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3년 이스라엘의 랜슬릿(Lenslet)이라는 기업이 갈륨아세나이드(GaAs)로 광변조기를 만들어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상용화에는 실패했습네다. 유럽연합에서는 옥스퍼드대를 중심으로 양자를 이용한 광전자 프로세서 개발이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하에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또한 일본도 이 분야에 눈독을 들이고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는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네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 컴퓨터의 기초 기술인 1디지트는 0과 1이라는 비트 개념을 광프로세서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고 특히나 수기가헬츠대의 클럭을 통해 CPU를 동작시켜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광전계 성능을 절대 따라 올 수 없습네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광전계는 클럭이 없습니다. 자료가 빛의 형태로 들어오면 빛의 속도로 처리되는 비동기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메모리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김영철 교수가 적외선 리모콘으로 슬라이드를 넘기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요즘은 기술이 많이 발전해 메모리와 광디스크가 점 점 더 고집적 대용량화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앞으로는 보조기억장치니 백업디스크니 하는 개념이 사라집네다. 광전계의 최상위층에 자리잡은 광저장장치가 이 기능을 대신하게 됩네다. 레이저로 가공되는 한 조각의 광저장장치에는 최대 12페타바이트(1페타=1024테라바이트)의 용량을 저장하게 됩네다만 전략적으로 용량을 낮춰 12테라바이트 단위로 생산할 예정입네다. 탄화수소실리콘만으로 이런 대용량 저장장치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기억소자 하나하나가 분자로 구성되기 때문입네다. 기본적으로 메탄은 탄소 하나에 수소 4개가 붙어 정4면체를 구성하고 있습네다. 여기에 실리콘이 융착되게 되면 정8면체의 완벽한 입자가 만들어집니다. 이 입자 하나가 최소 단위의 메모리가 됩네다. 더군다나 입자 하나마다 3비트 단위의 8가지 서로 다른 정보를 저장할 수 있고 비휘발성입네다."
이것은 미국의 HP 중앙연구소가 250만달러를 투자해 추진하고 있는 나노프로젝트에서 선언한 10년내 분자메모리를 구현하겠다는 장기 과제를 벌써 달성했다는 말이 된다. 이 프로젝트에는 우리나라의 정건영박사가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실로 어마어마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김영철교수가 잠시 숨을 고르며 좌중을 둘러 본다. 이쯤에서 질문을 받을 까 했는데 그럴만한 상황이 아닌 듯 싶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음을 이어 나간다.
"그러면 다음은 운영체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네다. 운영체계는 근 몇년을 프로그램 개발에 매진해 온 안재홍팀장이 직접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네다."
김영철교수가 멋지게 하드웨어부분의 설명을 마무리하고 안재홍팀장을 지목한 후 제 자리로 돌아간다. 흐믓한 미소를 띠우며 자리에 앉아 경청하던 박철웅위원장이 일어서서 먼저 나가 있던 안재홍팀장과 나란히 선다. 안재홍팀장은 팀장이라 불리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듯 싶은 어린 소년으로 보인다.
